한국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 부여는 역사, 문화, 자연의 아름다움의 혼합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숨겨진 보물입니다. 또다른 목적지에 의해 그늘이 드리워지는 부여는 고대 왕조, 건축적 경이로움, 고요한 풍경을 엮어주는 매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 경로 횡단
풍부한 역사적 유산 답사
부여는 충청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으로 동쪽으로 논산시, 서쪽으로 보령시와 서천군, 북쪽으로 공주시와 청양군, 남쪽으로 전북 익산시와 군산시를 접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수도 사비가 현재의 부여군으로 백제문화단지,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여라는 이름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이어온 지명이며, 백제시대에는 사비, 소부리, 소우리 등으로 불리웠습니다. 고대국가 부여는 지정학적으로 만주 지방에 위치하여 충청남도 부여군과 관련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부여 왕족이었고, 백제 왕들의 성씨도 부여씨였으며 백제 성왕이 국명을 남부여로 바꿨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이 도시는 기원전 청동기시대의 송국리 문화유형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3~4세기때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밀려나와 발생한 이주민들이 한반도로 오면서 삼한 중 마한 고포국의 영역이기도 하였습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분서왕 또는 비류왕 시기에 같은 마한의 백제국에 복속되었습니다. 이후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개로왕이 죽고 한성백제가 몰락한 뒤 웅진백제시대에 본격적으로 도시가 건설되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5세기 말인 동성왕 시기부터 왕이 사비로 사냥을 나갔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볼때 정치적 중요성이 현 공주시에 해당하는 수도 웅진성 다음으로 큰 도시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백제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538년 수도를 웅진성(현 공주시)에서 사비성으로 천도한 이래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6대에 걸쳐 122년간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가 되었습니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해 궁성을 비롯한 많은 문물이 소실되었는데, 한 백제인이 금동대향로를 땅 속에 묻은 것이 후세에 발굴되었습니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의 영역에 해당하였으며, 후백제가 일리천 전투의 패배로 멸망한 후 고려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감무가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부여현으로 재편되는 등 부여라는 이름을 오래도록 간직해오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9년에는 일본이 내선일체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부소산 일대에 부여신궁을 건축하려고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진구 황후를 비롯하여 백제와 관련된 일본의 옛 천황들의 신령 4위를 모시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완공되기 전에 일본이 패전하고 대한민국이 광복하게 되자, 건축중이던 부여신궁 건물을 부여청년동맹원들이 파괴하였습니다.
이 도시는 고대 백제의 수도라는 유산을 보존하며 역사의 살아있는 탑으로 부상합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정림사지는 백제의 건축적 위용에 대한 웅변적인 증거입니다. 과거의 속삭임이 울려 퍼지는 그것의 회상하게 하는 유적을 헤매고, 이 신성한 공간을 장식한 복잡한 세부 사항에 놀라며, 여러분을 웅장한 시대로 이동시킵니다. 부여 국립 박물관은 백제의 지속적인 영향의 화려함과 문화적인 중요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광범위한 유물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계몽의 등불의 역할을 합니다. 박물관의 복도를 가로지를 때, 각각의 유물은 역사의 장을 공개하고, 여러분을 시간과 다리 문화를 초월하는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초대합니다.
부여군의 역사 문화와 즐길거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부여문화관광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내추럴 뷰티 공개
부여의 아름다운 풍경을 품다
부여에 있는 4곳의 백제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지정되어 있는데, 정림사지, 부소산성, 관북리 유적과 부여관아 유적, 부여 왕릉원이 해당됩니다.
정림사지는 현재 터와 석탑 그리고 석불좌상만 남아있는 백제 시대의 호국 사찰입니다. 미륵사와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절이고 사비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불교유적이도 합니다.
정림사가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는 역사적인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도성 안을 중앙 동서남북 등 5부로 구획하고 그 내부에 왕궁과 관청, 사찰 등을 건립할 때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지가 정림사에 세워졌다고 전해집니다.
이와 같이 정림사는 사비백제 시대에 백제의 수도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설물로 여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폐사지가 된 시기는 불분명하나 고려시대 불상의 존재나 기와조각의 존재를 볼 때 적어도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 초기까지는 사찰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훗날 절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름도 잊혀졌습니다. 1942년에 와서야 일본인 후지사와 가즈오가 절터 발굴조사 중 발굴한 기와조각에 태평팔년무진정림사대장당초 라는 명문이 적혀 있어 정림사라는 이름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2008년 발굴조사를 한번 더 하여 정림사의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한 정림사지 박물관이 개장하게 되었습니다.
1942년 후지사와 카즈오의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림사의 가람배치는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으로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강당 건물과 중문이 회랑으로 이어져있는 북위의 양식인 일탑식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이는 백제의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고 알려진 일본의 시텐노지에서도 볼수 있는 가람배치 형식으로 이후 연구에서도 사비백제시대의 절은 모두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2008년 정림사지를 재조사 발굴한 결과, 강당 좌우에 2구의 부속건물지와 강당 뒤의 승방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림사의 가람배치 형식은 중문과 금당이 회랑과 바로 연결된 구조가 아닌 회랑이 각각 동회랑, 서회랑, 중문과 이어진 남회랑으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동회랑과 서회랑이 각각 금당 동서쪽에 위치한 부속건물에 이어진 형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라 정림사는 이후 사비기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 양식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정림사에서 남아있는 유적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입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석탑임에도 불구하고 목탑의 모양을 하고 있는 독특한 양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660년 백제 멸망전 당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 정복 기념으로 새긴 비문이 이 탑의 탑신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기 수도의 배후 산성입니다. 편의상 사비성으로 불리고 있으나 웅진 백제시기의 공산성과는 달리 배후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소산성을 사비성이라 부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부소산성 남쪽의 관북리 유적이 바로 수도 사비의 주요 왕궁 시설들로 추정되는 건물의 터가 발견된 유적입니다.
부소산성의 성벽 구조를 두고 다른 견해들이 존재하였으나 1980년대부터 부소산성을 조사하여 내부 내성 구간의 축조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고 일부 구간은 조선시대에 축조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래 백제 토성이 있었다고 조선시대에 작게 개축하였기 때문에 이중성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관북리 유적은 백제 사비왕궁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유적입니다. 후대에 확장된 일부만이 드러났을 뿐 사비왕궁의 정전을 포함한 중심권역 전체 규모가 밝혀진 바는 아직 없습니다.
관북리 유적에는 이중 주춧돌을 사용한 대형 건물지를 비롯하여 다양한 건물지와 연못, 전형적인 백제식 대형목곽고 등 저장시설이 있던 흔적이 나옵니다. 그러나 관북리 유적의 유구들이 비교적 양이 적고 위계가 있는 유구라봐야 이중 주춧돌 건물지 말고는 없습니다.
부여 왕릉원은 부여군의 동쪽에 위치한 고분군입니다. 총 3개의 무덤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비시대의 백제 왕릉원이었다고 합니다. 총 7기의 왕릉급 고분과 동쪽에 5기 서쪽으로 몇기의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발굴조사 이전에 이미 모두 도굴당하여 소수의 금제, 금동제 유물만이 수습되었을 뿐입니다.
전북 익산시 쌍릉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왕과 중국 허난성 뤄양시에 묻힌 의자왕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비시대 백제왕들은 부여 왕릉원에 묻힌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영왕릉의 지석처럼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나 무덤의 시대별 양식 변화나 출토품의 양상을 연구한 결과 정황상의 추정입니다.
역사적 보물들을 넘어 이 곳의 자연미는 동등한 매력으로 손짓합니다. 고요한 금강을 내려다보는 보초병인 낙화암은 매혹적인 전경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가슴 아픈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바위의 이름인 “낙화”는 백제의 연보에 나오는 비극적인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무성한 녹음과 고대의 성벽이 연합한 성역인 부소산성의 고요함을 만끽하십시오. 자연의 고요함에 감싸 안긴 채 역사의 층을 파헤치며 여유로운 하이킹을 떠나십시오. 서동공원은 고요한 연못을 배경으로 활짝 핀 연꽃이 만화경으로 장면을 그리며 고요함의 정수를 포착하는 경치를 만드는 사색의 성역을 제공합니다.
축제와 문화몰입
부여의 활기찬 문화 현장 체험
백제문화단지는 정부가 지정한 백제 문화권이 대통령령에 의해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백제의 옛 수도 지역인 규암면 합정리 일대에 조성된 백제 관련 테마파크입니다. 롯데그룹의 민자투자를 받아 롯데부여리조트, 롯데아울렛이 안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역시 단지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롯데리조트에 투숙하거나 롯데아울렛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백제문화단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총 100여만 평 규모로 부소산과 낙화암 맞은편 백마강변에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드라마 세트장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연구와 고증을 해서 실제 소나무 등 전통 건축자재와 건축방식을 활용하여 재현하였습니다. 인간문화재급 장인들이 여럿 투입되기도 하였습니다.
1998년 첫 삽을 뜰때 이 곳이 고향인 김종필(당시 국무총리)가 다녀갔다고 합니다. 백제문화단지 사업자체가 JP의 주도로 충청권 민심을 사기 위해 진행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2010년 세계대백제전 개막에 맞추어 2010년 9월 17일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테마파크 형식으로 개장되었으며 현재에도 롯데그룹에서 위탁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백제문화단지의 주요 건축물을 순서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 중 최초로 재현된 왕궁입니다. 대외적 공간인 치조권역을 재현한 상태입니다. 백제문화단지의 정문으로 정양문이 있으며 뒤에는 넓은 광장이 있습니다. 사비궁 중궁의 정문으로 천정문이 있고 사비궁 정전으로 천정전이 있습니다. 왕의 즉위 의례, 신년 행사 등 각종 국가 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사비궁 내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습니다.
사비궁 동궁의 정문인 현정문, 동궁에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인 문사전, 문신들의 집무 공간인 연영전, 동궁의 후문인 숭지문 등이 있습니다.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졌던 백제 왕실의 사찰입니다. 중문과 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어 백제시대 대표적인 가람배치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능사의 중문인 대통문을 지나면 능사 5층목탑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재현된 백제시대 목탑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곳이기도 합니다. 능사의 금당으로 대웅전이 있으며 능사에서 불상을 모시던 예불공간입니다. 백제시대의 불상인 삼존불이 무셔져 있고 불상 앞에는 금동대향로가 놓여져 있습니다. 능사의 강당으로 대중에게 불법을 설법했던 공간인 자효당이 있습니다.
다만 백제문화단지 능사 5층목탑에 대해서는 몇가지 비판이 있씁니다. 먼저 백제문화단지에 재현된 건축의 형태와 비율이 백제유물인 청동소탑편, 또는 호류지와 같이 백제와 동시대로 여겨지는 건축물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양식이라해도 건축물별로 다른 점이 있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백제의 건축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당대 유물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합니다.
유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옥충주자 같은 백제 또는 신라시대 유물이 있음에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옥충주자는 남북조시대 남랑의 건축 양식인데 백제 장인들이 만든 일본 사천왕사와 같은 양식이기도 합니다. 백제문화단지 재현단 측에서는 옥충주자를 상당히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 보면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또한 백제시대의 대표적 고분 형태를 보여주는 고분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백제문화단지 화계조성부지에서 출토된 4기와 은산면 가중리에서 출토된 3기 등 총 7기가 이전 복원되어 있습니다.
경주의 문화유산에 대해 궁금하시면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이 도시는 시간을 초월한 축제들로 엮어진 활기찬 문화적 태피스트리와 함께 살아 있습니다. 무왕과 서동공주의 백제시대 사랑 이야기의 기념인 부여서동연꽃축제가 서동공원의 찬란한 연꽃 속에서 펼쳐집니다. 매혹적인 공연에 참여하고, 전통 공예품을 탐험하고, 그 마을의 문화적 뿌리에 울려 퍼지는 맛있는 음식을 맛보세요. 부여의 왕관에 있는 또 다른 보석인 부여국제진돗개축제는 한국의 아끼고 충성스러운 진도 품종을 보여줍니다. 이 축제는 전통과 현대 사이의 차이를 메우며, 개 애호가들과 문화적 감정가들을 함께 모읍니다. 이 축제들은 방문객들이 고대의 의식에 참가하고, 진짜의 맛을 맛보고, 그 마을의 정신을 정의하는 동지애를 즐기도록 초대하면서 부여의 활기찬 마음을 밝혀줍니다.
부여에서의 잊지 못할 여행
부여를 통해 우리의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심오한 깨달음이 나타납니다. 이 숨겨진 보석은 잠금이 해제되기를 기다리는 탐험과 발견의 영역입니다. 그것의 역사적인 랜드마크, 고요한 풍경, 그리고 역동적인 축제들이 결합하여 여행자들의 마음에 울려 퍼지는 지울 수 없는 경험의 태피스트리를 만듭니다. 부여의 매력은 과거를 탐험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의 포옹에 몰입하고, 문화 유산의 활기를 축하하는 초대입니다. 고대의 울림, 고요한 여행, 또는 축제의 기념식에 이끌리든, 부여는 당신을 그것의 지속되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도록 초대하면서, 시간을 초월하는 매혹적인 여행의 약속으로 손짓합니다.
🚗 도심 여행 중에도 갈증은 피할 수 없죠.
휴대하기 좋은 대용량 텀블러 하나로 편하게 다녔습니다.
